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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조언이 필요하다. 혼자 아무리 생각해도 막막할 때, 가슴까지 뻥 뚫리는 뾰족한 수가 생기지 않을 때, 우리는 누군가의 속 시원한 충고가 간절해진다. 특히나 나보다 연배가 많은 어른, 상사, 선배가 던지는 말에는 약해진다. 고민의 깊이가 깊을 때 누군가가 던지는 단비와 같은 말은 때로 내 인생에 커다란 변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모두가 선생인 동시에 그 누구도 믿을 만한 선생이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사회경험을 하면서 배우는 것은 분명 있지만, 모든 가르침이 쓸 만하다는 것은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가르침을 고분고분하게 쫓는 사람일수록 윗사람의 충고를 되새겨 듣는데, 이는 때로 위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제 아무리 ‘어른’이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옳지 못한 말을 하기 때문이다.


J에게는 잘 따르던 상사가 있었다. J는 사내에서 대인관계가 좋았지만, 연봉이 턱없이 적은 탓에 회사에 정을 많이 주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저 하루하루 경력 쌓아 더 좋은 곳으로 가겠다는 일념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다른 팀원과 불화하는 일이 있었는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J는 이왕 이렇게 된 것, 이직이나 해보자는 결심이 확고하게 섰다. 지금 다니던 회사에서 1년을 채우지 못했다는 핸디캡이 있었지만, 남은 개월 수를 견딜 만큼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또한 현재 연봉이 너무 낮아서 지금 이직한다고 해도 다른 회사에서 경력직 연봉보다 훨씬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도 있었다. J가 사표를 냈을 때 상사는 아연실색했다. 상사는 그녀를 불러내 따로 면담을 했다.


“그러지 말고 다시 생각해봐요.”


회사가 한창 바쁜 때라 J가 당장 그만둬 버리면 일에 차질이 생길 것이 분명하다. 또한 직원이 사표를 쓰면 사장에게 리더십이 없다고 찍힐 수도 있다. 상사 입장에서는 손에 익은 사람이 일을 계속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새로운 누군가를 다시 가르쳐서 그 사람이 적응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꽤 버거운 일이다. 일의 진행속도도 느려지고 효율도 낮아진다. 그런데 사람이 자주 바뀌는 경우는 또 어떠한가. 상사는 이래저래 J가 필요했다. 아랫사람 데리고 1년을 함께 하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그녀는 ‘사람 부리는 것이 어렵다’고 한탄할 것이다. 하지만 J는 거절했다.



“그럼 1년만 채워 봐요. 그때 되면 내가 J씨 이직 자리도 알아봐 줄게.”


그녀는 마치 J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처럼 말한다. J는 평소 상사를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솔깃해졌다. 하지만 연이어 나온 그녀의 말에서 적잖이 실망했다.


“J씨는 결혼을 했기 때문에 앞으로 취업이 어려워요. 요즘 대졸자 애들도 취업 잘 안 되는 거 알잖아요.”


상사는 교묘히 J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J가 기혼자라는 것은 상사와도 별로 상관이 없을뿐더러 업계에서도 딱히 가리는 문제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이 지긋한 싱글들이 늦게 결혼을 한답시고 그만둬서 혼란스러워지는 것보다 이미 대소사를 모두 마친 기혼자들이 진득하게 앉아서 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또한 기혼자가 미혼자보다 더 책임감 있게 일한다는 평도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기혼자 문제를 들먹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상사는 여러 가지 설득에도 요지부동한 J를 괘씸하게 여긴 나머지 그녀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고 싶어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주는 척, 사려심 깊은 첨, 연봉도 턱없이 낮은 회사에 눌러 앉으라고 ‘회유’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껏 그녀의 말이라면 모두 신뢰했던 J로써는 한심한 노릇이었다. J는 회사를 그만둘 때 적당한 핑계거리가 없어 “아이 때문에 그만 두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사실은 대우가 나빠서 그만두는 것인데, 이렇다 할 핑계가 없어서 대는 이유였다.


누군가는 말했다. “기혼자는 좋겠다. 그만둘 때 임신을 했다고 하든지, 시어머니 병수발을 들어야 한다던지, 남편이 전근을 간다든지 핑계 댈 건덕지가 많아서.” 사표를 쓸 때 사직 이유는 튀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납득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미혼자라고 해서 사표 핑계를 댈 건덕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 테면, ‘유학을 가야 한다. 대학원에 가야 한다. 결혼해야 한다’ 등등 매우 많다. 거짓말이면서도 최대한 거짓말이 아닌 예의를 갖춘 말, 그것이 사표의 핑계다. J는 그 회사보다 훨씬 대우가 좋고 칼퇴근을 자랑하는 회사로 이직했다. 신입 연봉이었지만 그녀가 받는 연봉은 전에 다니던 회사의 팀장급이었다. 이상한 말로 회유하던 상사가 받는 월급보다 딱 20만원 차이가 나는 금액이었다. J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또한 내 경우도 선배에게 나쁜 충고를 들은 적이 있다. 멋모르고 입사했던 작은 회사. 아무것도 모르는 순둥이 시절이었기에 나는 선배를 매우 따랐다. 그때만난 선배는 ‘사회경험이 적어도 넌 잘 모른다. 그리고 모르는 게 다 티가 나’라는 말로 나의 기부터 꺾었다. 그리고는 경력의 중요성, 앞으로의 비전 등등 그녀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문제는 내가 좀 무비판적으로 들었다는 데 있었다. 내가 입사했을 때 그녀는 이미 사표 쓸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경력도 3년쯤 채워졌고 이것저것 할 줄 아는 것도 많아서 더 이상 연봉도 올려주지 않는 회사에 눌러 앉을 이유는 없었다. 그녀는 이력서를 쓰느라 여름휴가도 가지 않았다.



“여기 다녀보니까 3년도 소용없더라.”


그녀는 입사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나에게 자꾸만 이직을 권했다. 그녀는 한때 일부러 야근을 자원할 만큼 열정적으로 일했고 불평불만을 하는 직원들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일했다. 하지만 그녀의 업무 자체가 기계적인 성향이 있었고 일정하게 손에 익으면 누군가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일단 사장이 그녀의 일을 그렇게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아웃소싱도 가능한 분야였고 그 편이 더 저렴하기도 했다. 뒤집어 보면, 3년 동안 능력도 인정 못 받고 승진도 하지 못한 그녀가 스스로에게 자멸감을 느끼고 떠나는 것인데, 이 회사가 얼마나 후진적이며, 별 도움도 안 되는지, 다른 회사에 비교분석하며 논리정연하게 설명하면서 꿈많은 신입의 패기를 꺾는 것이다. 사실 이런 충고는 매우 중독성이 있어서 여기에 휘말린 많은 사람들이 어렵게 입사한 회사를 퇴사한다. 때로 회사생활을 지리멸렬하게 여기는 경력직은 그렇게 신입사원들을 떨궈 내면서 박봉을 선사한 사장에게 교묘한 복수를 하기도 한다. 결국은 권태기 직장인의 매너리즘과 딜레마일 뿐인데 멋모르는 신입까지 전염된 것이다. 비전으로 가득찬 뇌가 자멸감으로 가득찬 뇌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다.


회사에서 존재하는 ‘좋은 언니’들의 ‘나쁜 충고’는 매우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실제로 경력직과 함께 신입까지 몽땅 퇴사하는 풍경이 심심치 않게 있다. 이 경우 신입은 분명 손해를 본 것이다. 또 다른 회사에서 또 신입 생활을 하는 것은 정말 가혹하다. 별 차이 없어 보여도 ‘경력 1년차’가 그래도 낫다. 하지만 퇴사 무리에 신입을 합류시킨 경력직이라면 그렇게 양심적이라고 볼 수 없다. 그들이 퇴사를 결심한 건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다. 아무리 진득한 관계를 형성했다고 해도 회사를 그만두면 다시 만나지 않을 사이인데도 의리와 우정을 지키겠다고 어리석인 결심을 하는 이들도 있다. 선배라고 해서 반드시 당신을 위해서 당신이 잘 되길 바라기 때문에 충고를 하지 않는다. 만일 당신이 위해서라면, “경력을 쌓아서 더 좋은 곳으로 가라.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보라” 라고 말할 것이다.


대개 세상을 많이 겪어본 사람이 더 지혜롭다. 하지만 그 지혜가 모두에게 쓸모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생활에서 상사와 선배는 ‘친해놓으면’ 편하고 ‘찍히면’ 괴롭다지만, 그들의 ‘웃는 얼굴’ ‘다정한 말투’가 반드시 우리의 삶에 이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은 당신을 위해서 당신을 위주로 하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못한다. 사회생활에서 이익의 주체는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철저히 자기 기준에서 자기 유리한 대로 말할 뿐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나쁜 충고일수록 마음에 와 닿는 경향이 있다. 나쁜 충고 앞에서 더욱 공감할 수도 있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당신은 누군가의 ‘충고’를 만날 때면 그것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말고 다시 한 번 냉철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 충고가 정말 당신을 위한 것인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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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지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