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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란 유약 속의 철이 약간 섞인 그릇을 만든 뒤 철분 1~3%가 함유된 콩기름을 바르고 섭씨 1250~1300도에서 염분을 줄여 굽다가 청록색으로 변한 자기를 말한다. 중국 한나라 때 절강성 월주에서 원시청자가 처음 만들어졌으며, 5세기부터 6세기까지 점차 발전하여 당나라를 거쳐 송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후반부터 한국 청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는데, 이는 10세기 후반 고려의 중앙집중화로 떠오른 중국 신지배층의 중국 청자 수요와 중국 청자의 영향 때문이다.


9세기 후반이나 10세기 무렵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고려청자가 11세기 후반에 개발되어 제빵의 형태와 무늬, 방법 등에서 고려의 독특한 특징이 발견되었고,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에는 대규모 가마터가 설치되었다.


12세기 전반은 청자 가운데 청자가 순수하게 듣는 전성기였다. 1123년 고려를 방문한 북송 사신 서긍이 쓴 『선화봉사경』에는 고려가 얼음장이 거의 없는 빈정거리는 청자의 비문을 완성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시기에는 순청자가 발달하면서 상감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다. 상감기법은 12세기 초 그릇의 일부에 무늬를 표시하는 데만 사용되었으나 점차 그릇 앞쪽으로 퍼져나가면서 사실적인 무늬가 양식화되기 시작했다.


고려 귀족문화의 정점이었던 12세기 중엽에는 상감청자뿐만 아니라 퇴적청자, 철청자, 퇴화문자, 진사청자 등 다양한 기법을 가진 청자가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그러나 고려의 지배권이 문신에서 무속적, 사회경제적 조건으로 바뀌면서 전반적인 사회경제적 여건이 변화하면서 몽골의 침략과 12~13세기 후반의 침략 등 청자의 형태에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14세기에는 원지배계급과 귀족세력의 등장으로 자수품 수요가 증가하면서 대량생산이 불가피해 분청사기가 청자로 대체되었다.


요컨대 고려는 불교사회와 귀족문화를 배경으로 한 순청자를 주로 만들고 다듬어 12세기 전반의 유례없이 아름다운 무채청자를 생산했고, 12세기 중반에는 유약을 맑고 깨끗하게 발전시켜 우수한 상감청자를 발전시켰다. 환한 그러나 섬세하고 선명한 색채와 우아한 모양, 독특한 상감 기법, 화려한 무늬를 통해 평온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던 고려청자는 13, 14세기 고려사회가 변하면서 변천과 쇠퇴를 거듭하며 조선 도자기로서의 전통을 이어갔다.